용천수가 있는 저지대에는 마을 공동수도 등 간이수도 사업이 빠르게 진행되었으나 중산간 지역 등 고지대에는 마땅한 수원이 없었다.

따라서 지역주민들은 병원균이 득실거리는 비위생적인 봉천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이처럼 중산간지역의 급수문제는 시급한 현안중의 하나였다.

제주의 물이야기 제2탄에서는 지하수개발 성공과정과 현재까지 개발현황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 지하수 개발

1. 심정굴착사업

1960년부터 중산간 마을의 물문제 해결 방안의 하나로 심정굴착사업이 계획되기 시작하여 수원조사 등을 실시하였다.

1961년 10월10일 애월읍 수산리에서 제주도 최초로 심정굴착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착공후 1개월이 지난 후 72m의 착정을 마치고 양수시험을 한 결과 395톤의 지하수가 양수되었다.

이후 1967년까지 1,300만원여를 투자하여 59개소에서 진행되었으나 이중 18개소만이 성공하여 30.5%의 성공율을 보였고 이마저도 굴착심도가 얕아  가뭄때는 물이 말라버리는 현상까지 발생함으로써 중산간 지역의 급수난은 여전히 해소하지 못하였다. 이 당시 착정기는 타격식 착정기로 깊은 심도에 있는 지하수까지 도달하지 못하여 대부분의 지역에서 실패하고 그나마도 상위지하수가 흐르는 일부 지역에서 평시 사용이 가능하였다.

2. 농업진흥공사 설립

농림부에서는 1969년 1월에 "지하수개발공단"을 발족하였고 1970년 2월에 지하수개발공단과 토지개량조합연합회를 통합하여 "농업진흥공사"(지금의 한국농어촌공사)가 설립되었다. 공사에서는 1970년 7월부터 제주도 다목적지하수개발사업을 위한 기초조사를 실시하여 1/10만 제주도 지질도를 만들었는데 이 지질도는 국내 지질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제주도 최초의 지질도가 되었다.

농업진흥공사에서는 지하수 부존형태를 상위지하수와 기저지하수로 구분하여 경제적 실효성있는 개발 가능한 지하수는 표고 100m 이하에 부존하는 약 123억1,400만톤으로 추정하여 관정개발이 연차적 계획에 따라 시행되어야 할 것으로 제안하였다.

3. 지하수 개발 성공

농업진흥공사는 1970년 한림읍 동명리와 명월리에 조사공 개념으로 착수하였고 명월리는 암반굴착 중 공이 휘어져 10m쯤 굴착하다 철수되었으며 동명리에서는 한림철공소에서 기계를 개조하고 2km 떨어진 지역의 봉천수를 끌어들여 순환수로 사용하며 저속 굴진하기를 반복 1일 2,000톤의 지하수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역사적인 지하수 1호공이 탄생하게 되었다.

(동명1호공-한림읍 동명리 2204-5번지)

이후 농업진흥공사는 1972년 27개소 등 1980년까지 143개소의 지하수 관정을 뚫어 1일 21만9천톤의 지하수를 상수도와 농업용수로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제주도 물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하였다.

4. 지하수와 농업의 발전

지하수의 개발은 중산간지역의 상수도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제주도 농업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1990년대 초까지는 가뭄대비 용으로 일부 개발되던 농업용 관정은 1994년도 밭기반정비사업이 시작되면서 농업용관정 개발이 급속도로 개발되기 시작하였고 이 시기부터 제주도 농업은 청정 지하수를 이용한 시설재배 등이 증가하며 농가소득도 향상되기 시작하였다.

제주특별자치도 수자원관리 종합계획보고서에 의하면 2011년까지 지하수 개발은 공공관정과 사설관정을 포함하여 총 4,851공이 개발되었고 이 중 농업용 관정은 3,316공이 개발되었다.

지하수개발에서 급수까지

(시추작업)

(양수작업)

(시추코아-로터리공법)

(물탱크 설치)

(급수-스프링쿨러)

 

5. 먹는 샘물의 개발

ㅇ 제동흥산(주)의 제주 '먹는샘물' 판매 

 "먹는물 관리법"이 시행되기 이전 제주도 내에 먹는 샘물을 제조 판매하는 업체는 한진그룹 계열의 제동흥산(주) 한개 업체만 있었으며 주로 대한항공 기내용으로 공급해오다 1985년 중동의 바레인에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1989년 9월 제주도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슈로 떠올랐으며 정부는 "먹는물관리법"을 제정하여 1995년 먹는샘물이라는 명칭으로 국내 시판이 허용되면서 사기업에 대한 무차별 개발을 규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제주도는 먹는샘물의 제조.판매를 목적으로하는 지하수 이용허가를 지방공기업이 지하수 보전과 관리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하고자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할 수 있도록 1995년 1월5일 특별법에 반영함으로써 사기업에 의한 새로운 먹는샘물 개발을 완전 차단시켰다.

ㅇ 명품 "제주삼다수"의 탄생

제주개발공사의 먹는 샘물 "제주삼다수"의 개발은 민선 1기 제주도정의 대형 정책사업의 하나로 추진되었다. 1995년 3월8일 제주도지방개발공사 설립 등기를 마치고 조천읍 교래리 산70번지 일대 공장이 1998년 1월23일 준공식을 가졌고 오늘날의 명품 삼다수가 탄생하게 되었다.

(1995년 삼다수 착정)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발전연구원의 "제주상수도 50년"에서 발췌 및 일부 한국농어촌공사 자료 협조.

이상 제주도의 물이야기 중 제2탄 지하수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3탄에서는 저수지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3탄도 보고 싶다면 공감 ♡  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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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봥옵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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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루에 몇 번 샤워하십니까?

 

당신은 물이 없어서 주변에 물을 찾아 다니신적이 있나요?

 

  요즘같은 무더위에 물이 없다면 어떨까요?

지금은 어디서나 수돗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그것도 부족해 더 좋은 물을 마시기 위해 돈주고 생수를 사서 마시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물을 쉽게 구할수 있었던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바로 우리 할아버지, 아니 우리 아버지 시절만 해도 수도가 없어서 물허벅이나 주전자를 들고 용천수나 동네 공동수도에서 줄을 서서 물을 길어온 적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앞으로 제주도의 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쉽게 쓰고 있는 물의 소중함을 알리고 제주도의 보물인 지하수를 보존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이 글을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제주 아낙네들의 고된 삶이었던 물허벅시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허벅시대

1. 제주 아낙네들의 고된 삶

물이 귀했던 시절 제주의 아낙네들은 물허벅으로 물을 길어와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했다. 가뭄이 들면 물허벅(20리터)을 등에 지고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 물을 운반해야 했다. 물허벅은 제주도 물 이용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민간 도구이다.

 

제주의 가뭄은 짧게는 1개월 길게는 6개월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가뭄이 들게 되면 먼길을 물허벅을 등에 지고 물을 길어 날라야했던 일들이 우리 할머니들의 고된 삶의 일과였다. 그래서 옛날 할머니들이 대부분 허리가 굽었던 이유가 여기 있는거 같다.

 

 2. 용천수

제주도에는 비가 많이 내리는 편이지만 지질구조가 물이 쉽게 빠져 대대로 물고통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근대식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 식수는 물론 허드렛물을 용천수나 봉천수에 의존했으며 가뭄이 들어 집 근처의 수원이 말라버리면 수십리 떨어진 곳의 용천수를 길어오는 노역을 되풀이 해야만 했다. 마을의 용천수는 주민의 생명수였기 때문에 식수, 빨래등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물통을 만들어 사용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제주시에 두 흐름의 용천대, 즉 동부의 산지천과 서부의 병문천 연안지역으로 이지역 용천수를 기준으로 운반거리에 따라 석유통 1통당 1전에서 4전까지 물값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아래 도면의 청색지역은 용천수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1전을 받았고 노란색 지역은 지금의 시청지역으로       4전을 받았다. 


 

3. 공동수도

광복이후 제주도의 시급한 현안 중에서도 물문제 해결이 최대 과제로 거론되었다. 주민의 보건위생뿐 아니라 제주도 개발 촉진을 위해서는 물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인식하고 1953년 금산수원 개발을 시작으로 1955년 우물보수 및 신설 사업 등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급수형태는 공동우물 체제에서 도시상수도, 간이급수시설, 심정굴착으로 발전해나갔다..

도시상수도 공사는 제주시, 서귀, 애월, 한림, 대정지구 등에서 시행됐고 간이상수도는 수원지 주변 마을, 심정굴착은 중산간 마을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1959년 한경면 산양리에서 공동우물이 준공되었고 1960년 이후 제주도 급수사업은 5.16군사 정부의 3대 역점사업의 하나로 선정되어 물의혁명이라 불리며 빠르게 진행되어 나갔다.


 

조상대대로 용천수와 봉천수에 의존해 살아오던 주민들에게 수도꼭지를 통해 물을 얻을수 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으며 그것은 기쁨과 감격이었다.

2탄에서는 제주도 지하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Posted by 강봥옵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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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바리 2018.08.27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주 물에 대해 발표할 일이 있어서 사진자료를 찾고 있는데요~ 게시글의 사진들은 혹시 어디서 가져오신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