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후 정부는 쌀 증산을 기하고자 농업용수 개발에 집중적인 투자를 계속하면서 대규모 저수지를 축조하였고 이때 제주도에도 농업용저수지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광령저수지, 용수저수지, 수산저수지 등 농업용저수지가 건설되고 급수난 해결을 위한 Y계곡 용천수를 상수원으로 하는 개발 방안은 1930년대 말부터 거론되기 시작하였으나 실행되지는 않고 있었다.

제주의 물이야기 1탄 물허벅, 2탄 지하수에 이어 이번 3탄에서는 저수지이야기를 상수도와 농업용수로 구분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제1탄 물허벅시대 다시보기

제2탄 지하수 이야기 다시보기

 

□ 어승생저수지(상수도)
1. 어승생 제1저수지
어승생 수원 개발의 필요성은 1950년대 말부터 북제주군 출신 김두진 국회의원이 국회예결산위원회에서 급수난 해결을 위한 어승생수원 개발을 정부에 촉구하였으나 어승생수원개발보다 간이급수 시설사업에 비중를 두어 추진이 되지않고 있었다.

이후 1964년 제주도는 심한 가뭄을 겪고 봉천수가 바닥을 드러낸 것은 물론이고 우물과 용천수의 양이 줄어 전도에서 물난리를 치렀다.

1965년 건설부는 제주도의 심각한 급수난 해결을 위해 "제주도 고산지대수원 이용계획 조사" 용역을 실시해 어승생 및 99골수원을 이용하여 저지대의 상수도와 농업용수를 공급함과 아울러 수력발전을 통한 전력 생산 방안까지도 제시하였다.

 

1966년 제주도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물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한라산 고지대 수원을 개발 방안을 연구하도록 지시하였고 제주관광호텔 메모지에 "제주도 수자원개발기본 구상도"를 직접 그려 정우식 도지사에게 지시를 내림으로써 어승생저수지 건설사업이 시동되었다.


 

어승생저수지 건설사업에는 전국에서 검거된 폭력사법들이 "국토건설단"이란 이름으로 공사현장에 투입되어 5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1971년에 준공을 하게되었다.

 

△제1어승생저수지 전경

 

어승생저수지의 건설은 물의혁명을 가져왔다.

제주 부녀자들의 물허벅 짐을 내려놓게 함으로써 제주 물이용 역사를 일순간에 바꿔 놓았고 근대식 상수도 시설을 통해 비위생적인 식수로 인한 수인성 전염병과 풍토병 감염 걱정으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어승생저수지는 동쪽으로 구좌읍 송당리, 서쪽으로는 안덕면 동광리에 이르는 15개 송수관로를 설치하여 중산간지역의 마을 주민들에게 깨끗한 식수가 공급되게 되었다.

어승생 제1저수지의 저수량은 106,800톤이다.

 

2. 어승생 제2저수지

이후 중산간 지역의 보다 안정적인 급수를 위한 용수를 추가 확보하기 위하여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제주시 해안동 2821-1번지 1100도로 변에 어승생 제2저수지를 건설하였다.

 

△어승생 제2저수지 전경

 

취수원은 Y계곡의 용천수를 유입시켜 50만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규모의 저수지이며 사업비는 45,875백만원이 투입되었다.

 

□ 농업용저수지

제주도는 농업용저수지 개발이 상당히 어려운 지형, 지질적 특성을 갖고 있다.

지질 특성상 투수가 잘되어 물을 오래 저장하기가 어렵고 하천이 대부분 건천이어서 하천수 유입이 어려운 면이 있다.

따라서 하천에는 1년에 3~4회 정도 흐르는 물을 저장해서 가뭄때 농업용수로 사용할려면 저수지 용량이 커야되고 저수지 바닥은 차수시설을 하여야 하므로 육지부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비용의 공사비가 들어간다.

해방후 쌀증산을 위한 농업용저수지 개발은 농지개량조합에서 시행하였고 이후 농지개량조합과 농지개량조합연합회, 농어촌진흥공사가 2000년도에 통합하여 농업기반공사가 되었고 이후 2008년 한국농어촌공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지금의 농촌용수개발사업은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시행 및 관리하고 있다.

 

1. 광령저수지

1930년대에 어승생수원을 광령리 지역 논농사에 이용하기 위한 시설이 만들어졌다.

당시 일신학교(현 구엄초교) 설립자 백창유씨가 일본 자본가와 함께 어승생 물을 끌어다 광령,해안,외도,하귀 등에 수로를 설치하여 논을 경작할 계획으로 저수지를 만들었으나 5년간 적자운영으로 사업을 포기하고 1954년에 정부에서 사업비를 투자하여 현재의 저수지가 만들어졌다.

 

△광령저수지 전경

 

사업시행은 제주농지개량조합에서 시행하였고 저수용량은 51,000톤이다.

 

2. 용수저수지

한경면 용수리 지역의 가뭄에 대비하기 위하여 1957년 건립되었으며 평대지, 뱅뒷물저수지, 서부저수지, 용수황새도래지라고도 부른다.

용수저수지에는 황새뿐만 아니라 백로, 외가리, 바다오리 등 철새들이 날아와 서식한다.

 

△용수저수지 전경

 

용수저수지는 저수용량이 253천톤이며 현재 양수장을 설치하여 용수리 일대 일부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3. 수산저수지

1959년 식량생산을 목적으로 한 농업용 저수지로 속칭 답단이내를 막고 공사를 시작하여 1960년에 준공하였다.

이때 오름가름 및 벵디가름에 거주하는 70여세대가 철거해야 했으며 이들은 제주시와 번데동, 구엄리 모감동 등으로 이주하였다.

 

△수산저수지 전경

 

저수용량이 681,000톤으로 제주에서는 큰 저수면적과 수량을 확보하고 있으며 1980년대 말에는 저수지 주변을 위락시설과 유료낙시터로 개발할 계획으로 보터장과 야외풀장, 식당이 들어서 유원지로 활용하였으나 현재는 이러한 목적의 시설은 사용하지 않고 인근 농경지에 가뭄시 비상용 농업용수로 공급하고 있다.  

 

4. 농어촌용수개발사업

현재 제주도 농업용수의 96%는 지하수로 공급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농업용수는 계속 부족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부족한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지하수 개발에는 한계가 있다.

이미 동부지역과 일부 해안가 주변 지하수에는 염분이 검출되어 농업용수로 사용이 부적격한 곳이 많고 앞으로 무분별하게 지하수 개발을 하게 되면 제주도의 소중한 보물인 지하수 전반에 문제가 발생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하수는 보존하면서 영향조사 등 계획적인 개발을 하고 용천수나 지표수를 개발하여 부족한 농업용수 공급을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농어촌공사에서는 지표수를 활용한 농어촌용수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 농어촌용수개발사업계획 위치도

 

ㅇ 성읍지구 농촌용수개발사업은 2003년 착공하여 2015년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성읍지구 농촌용수개발사업 준공식

 

△성읍저수지 전경

 

성읍저수지는 총저수량이 1,250,000톤으로 성읍리 등 표선면 일대 400ha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게 될 것이다.

 

ㅇ 옹포지구 농촌용수개발사업은 2005년 공사에 착수하여 2019년 준공 예정으로 저수지는 동명지( 151,000톤), 상대지(522,000톤) 2개 저수지를 건설할 예정으로 한림읍 동명리외 10개리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게 될 것이다.

 

ㅇ 함덕지구는 2011년 공사에 착공하여 2018년 준공예정으로 송당지 총저수량 849,000톤이며 제주시 구좌읍과 조천읍 일원에 농업용수 및 홍수조절을 위한 저류지 2개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ㅇ 서림지구는 2016년 착공하였으며 저수량 302,000톤 용량의 저수지 1개소를 설치하여 대정읍 영락,무릉,신도,일과리 일원에 농업용수를 공급할 예정이다.

 

제주도수자원종합계획에 의하면 제주도는 30년 후 1일 30만톤의 용수를 추가 개발하여야 상수도 및 농업용수를 원할히 급수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이미 지하수는 보전 및 관리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 중이고 향후 부족한 용수를 지표수에서 찾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기 개발된 수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농업용수통합광역화사업을 2016년도 기획재정부로 부터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여 2017년도 기본계획 수립할 예정이다.

최근 제주도 유입인구가 대폭 증가하고 있고 부족한 용수 수요를 차질없이 공급하고 한편으로는 지하수 보전을 위해 행정과 도민 전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상 3탄을 마치고 4탄에서는 제주도 농업용수통합광역화사업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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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봥옵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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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수래공수거 2017.01.26 09: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전 저수지 포스팅을 하면서 그때 몇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경북에 저수지가 가장 많이 잇더군요 ㅎㅎ

  2. 워크뷰 2017.01.26 12: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역사가 있었군요!

  3. GeniusJW 2017.01.26 13: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주도 하면 삼다물 만 떠올리던 제게,
    이런 저수지부터 물의 역사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4. 문moon 2017.01.26 1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주도에서 물공급은 아주 중요하겠군요.
    우리집도 삼다수를 먹고 있는데 지하수를 너무 많이 빼내면 문제가 생긴다고 들었어요.
    식수, 농업용수가 다 중요하겠습니다.

  5. 학원생 2018.04.23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꾹꾹 이런 역사가 있었다니 물의 역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초대장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부탁 드립니다.
    dog41004@naver.com

용천수가 있는 저지대에는 마을 공동수도 등 간이수도 사업이 빠르게 진행되었으나 중산간 지역 등 고지대에는 마땅한 수원이 없었다.

따라서 지역주민들은 병원균이 득실거리는 비위생적인 봉천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이처럼 중산간지역의 급수문제는 시급한 현안중의 하나였다.

제주의 물이야기 제2탄에서는 지하수개발 성공과정과 현재까지 개발현황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 지하수 개발

1. 심정굴착사업

1960년부터 중산간 마을의 물문제 해결 방안의 하나로 심정굴착사업이 계획되기 시작하여 수원조사 등을 실시하였다.

1961년 10월10일 애월읍 수산리에서 제주도 최초로 심정굴착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착공후 1개월이 지난 후 72m의 착정을 마치고 양수시험을 한 결과 395톤의 지하수가 양수되었다.

이후 1967년까지 1,300만원여를 투자하여 59개소에서 진행되었으나 이중 18개소만이 성공하여 30.5%의 성공율을 보였고 이마저도 굴착심도가 얕아  가뭄때는 물이 말라버리는 현상까지 발생함으로써 중산간 지역의 급수난은 여전히 해소하지 못하였다. 이 당시 착정기는 타격식 착정기로 깊은 심도에 있는 지하수까지 도달하지 못하여 대부분의 지역에서 실패하고 그나마도 상위지하수가 흐르는 일부 지역에서 평시 사용이 가능하였다.

2. 농업진흥공사 설립

농림부에서는 1969년 1월에 "지하수개발공단"을 발족하였고 1970년 2월에 지하수개발공단과 토지개량조합연합회를 통합하여 "농업진흥공사"(지금의 한국농어촌공사)가 설립되었다. 공사에서는 1970년 7월부터 제주도 다목적지하수개발사업을 위한 기초조사를 실시하여 1/10만 제주도 지질도를 만들었는데 이 지질도는 국내 지질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제주도 최초의 지질도가 되었다.

농업진흥공사에서는 지하수 부존형태를 상위지하수와 기저지하수로 구분하여 경제적 실효성있는 개발 가능한 지하수는 표고 100m 이하에 부존하는 약 123억1,400만톤으로 추정하여 관정개발이 연차적 계획에 따라 시행되어야 할 것으로 제안하였다.

3. 지하수 개발 성공

농업진흥공사는 1970년 한림읍 동명리와 명월리에 조사공 개념으로 착수하였고 명월리는 암반굴착 중 공이 휘어져 10m쯤 굴착하다 철수되었으며 동명리에서는 한림철공소에서 기계를 개조하고 2km 떨어진 지역의 봉천수를 끌어들여 순환수로 사용하며 저속 굴진하기를 반복 1일 2,000톤의 지하수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역사적인 지하수 1호공이 탄생하게 되었다.

(동명1호공-한림읍 동명리 2204-5번지)

이후 농업진흥공사는 1972년 27개소 등 1980년까지 143개소의 지하수 관정을 뚫어 1일 21만9천톤의 지하수를 상수도와 농업용수로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제주도 물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하였다.

4. 지하수와 농업의 발전

지하수의 개발은 중산간지역의 상수도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제주도 농업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1990년대 초까지는 가뭄대비 용으로 일부 개발되던 농업용 관정은 1994년도 밭기반정비사업이 시작되면서 농업용관정 개발이 급속도로 개발되기 시작하였고 이 시기부터 제주도 농업은 청정 지하수를 이용한 시설재배 등이 증가하며 농가소득도 향상되기 시작하였다.

제주특별자치도 수자원관리 종합계획보고서에 의하면 2011년까지 지하수 개발은 공공관정과 사설관정을 포함하여 총 4,851공이 개발되었고 이 중 농업용 관정은 3,316공이 개발되었다.

지하수개발에서 급수까지

(시추작업)

(양수작업)

(시추코아-로터리공법)

(물탱크 설치)

(급수-스프링쿨러)

 

5. 먹는 샘물의 개발

ㅇ 제동흥산(주)의 제주 '먹는샘물' 판매 

 "먹는물 관리법"이 시행되기 이전 제주도 내에 먹는 샘물을 제조 판매하는 업체는 한진그룹 계열의 제동흥산(주) 한개 업체만 있었으며 주로 대한항공 기내용으로 공급해오다 1985년 중동의 바레인에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1989년 9월 제주도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슈로 떠올랐으며 정부는 "먹는물관리법"을 제정하여 1995년 먹는샘물이라는 명칭으로 국내 시판이 허용되면서 사기업에 대한 무차별 개발을 규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제주도는 먹는샘물의 제조.판매를 목적으로하는 지하수 이용허가를 지방공기업이 지하수 보전과 관리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하고자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할 수 있도록 1995년 1월5일 특별법에 반영함으로써 사기업에 의한 새로운 먹는샘물 개발을 완전 차단시켰다.

ㅇ 명품 "제주삼다수"의 탄생

제주개발공사의 먹는 샘물 "제주삼다수"의 개발은 민선 1기 제주도정의 대형 정책사업의 하나로 추진되었다. 1995년 3월8일 제주도지방개발공사 설립 등기를 마치고 조천읍 교래리 산70번지 일대 공장이 1998년 1월23일 준공식을 가졌고 오늘날의 명품 삼다수가 탄생하게 되었다.

(1995년 삼다수 착정)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발전연구원의 "제주상수도 50년"에서 발췌 및 일부 한국농어촌공사 자료 협조.

이상 제주도의 물이야기 중 제2탄 지하수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3탄에서는 저수지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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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하루에 몇 번 샤워하십니까?

 

당신은 물이 없어서 주변에 물을 찾아 다니신적이 있나요?

 

  요즘같은 무더위에 물이 없다면 어떨까요?

지금은 어디서나 수돗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그것도 부족해 더 좋은 물을 마시기 위해 돈주고 생수를 사서 마시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물을 쉽게 구할수 있었던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바로 우리 할아버지, 아니 우리 아버지 시절만 해도 수도가 없어서 물허벅이나 주전자를 들고 용천수나 동네 공동수도에서 줄을 서서 물을 길어온 적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앞으로 제주도의 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쉽게 쓰고 있는 물의 소중함을 알리고 제주도의 보물인 지하수를 보존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이 글을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제주 아낙네들의 고된 삶이었던 물허벅시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허벅시대

1. 제주 아낙네들의 고된 삶

물이 귀했던 시절 제주의 아낙네들은 물허벅으로 물을 길어와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했다. 가뭄이 들면 물허벅(20리터)을 등에 지고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 물을 운반해야 했다. 물허벅은 제주도 물 이용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민간 도구이다.

 

제주의 가뭄은 짧게는 1개월 길게는 6개월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가뭄이 들게 되면 먼길을 물허벅을 등에 지고 물을 길어 날라야했던 일들이 우리 할머니들의 고된 삶의 일과였다. 그래서 옛날 할머니들이 대부분 허리가 굽었던 이유가 여기 있는거 같다.

 

 2. 용천수

제주도에는 비가 많이 내리는 편이지만 지질구조가 물이 쉽게 빠져 대대로 물고통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근대식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 식수는 물론 허드렛물을 용천수나 봉천수에 의존했으며 가뭄이 들어 집 근처의 수원이 말라버리면 수십리 떨어진 곳의 용천수를 길어오는 노역을 되풀이 해야만 했다. 마을의 용천수는 주민의 생명수였기 때문에 식수, 빨래등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물통을 만들어 사용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제주시에 두 흐름의 용천대, 즉 동부의 산지천과 서부의 병문천 연안지역으로 이지역 용천수를 기준으로 운반거리에 따라 석유통 1통당 1전에서 4전까지 물값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아래 도면의 청색지역은 용천수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1전을 받았고 노란색 지역은 지금의 시청지역으로       4전을 받았다. 


 

3. 공동수도

광복이후 제주도의 시급한 현안 중에서도 물문제 해결이 최대 과제로 거론되었다. 주민의 보건위생뿐 아니라 제주도 개발 촉진을 위해서는 물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인식하고 1953년 금산수원 개발을 시작으로 1955년 우물보수 및 신설 사업 등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급수형태는 공동우물 체제에서 도시상수도, 간이급수시설, 심정굴착으로 발전해나갔다..

도시상수도 공사는 제주시, 서귀, 애월, 한림, 대정지구 등에서 시행됐고 간이상수도는 수원지 주변 마을, 심정굴착은 중산간 마을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1959년 한경면 산양리에서 공동우물이 준공되었고 1960년 이후 제주도 급수사업은 5.16군사 정부의 3대 역점사업의 하나로 선정되어 물의혁명이라 불리며 빠르게 진행되어 나갔다.


 

조상대대로 용천수와 봉천수에 의존해 살아오던 주민들에게 수도꼭지를 통해 물을 얻을수 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으며 그것은 기쁨과 감격이었다.

2탄에서는 제주도 지하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Posted by 강봥옵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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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바리 2018.08.27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주 물에 대해 발표할 일이 있어서 사진자료를 찾고 있는데요~ 게시글의 사진들은 혹시 어디서 가져오신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