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이 웬만큼 진정국면에 들어섰다고 여겼는데 

1950년 6.25 전쟁 발발로 다시 한번 민심이 흉흉해지고 동네가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래도 설마 이 곳까지는 별일 없겠지 하며 맘 한편으로 위안을 삼고 있었는데....

7월 무더웠던 여름밤 늦은 시간 

갑자기 들이닥친 모슬포경찰서에서 나온 순경들에 의해 이상숙의 남편은 연행되어 갔다.


1945년 해방되던 해 만20세의 나이에 안덕초등학교 교사인 1살 연하 남편에게 시집온지 5년..

워낙에 혼란스런 시기에 제대로 신혼의 단꿈에 젖어보지도 못하고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채 남편은 그렇게 끌려갔다.

전쟁후 6월부터 7월까지 예비검속이란 미명하에 모슬포경찰서 관내에서 이렇게 구인된 인원만 344명이었다.


※ 예비검속

6.25전쟁이 발발하자 치안국장의 명으로 각경찰서에 불순분자 검거의 명이 하달되어 공무원,유지, 지식인 및 사상이 불순하다고 판단되거나 보도연맹에 가입되어 사상이 의심이 될만한 인물들을 강제 구금하여 그 경중을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A, B, C, D 등급으로 구분하여 제주도 주둔 해병대 계엄사령부에 이관하였다.


△예비검속에 의해 연행된 인원은 모슬포 절간 창고와 한림 수협창고 및 무릉지서에서 분산 수용하였다.


이상숙은 다음날 수소문 끝에 남편이 모슬포 절간 창고에 구금되어 있는 걸 알게 되고 장농에서 옷가지 등을 챙겨 면회를 가게된다.


※ 검속 초기에는 경찰의 감호하에 가족의 면회를 허용하고 유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또 한편으로는 경찰 자의적 판단에 따라 4개 등급으로 분류하며 살생부를 작성하였다.


매일 밤을 불안과 남편 걱정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던 중

8월20일(음력 7월7석) 새벽 2시경 

누군가 집으로 달려와 구금되었던 사람들을 트럭에 태우고 어딘가로 끌고 가고 있다고 알려준다.

불안한 낌새에 이상숙은 달빛마저 깜깜한 밤길을 맨발로 거리로 뛰쳐 나간다.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었고 

어두운 밤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발바닥은 이미 다 까진 상태이지만

아랑곳 않고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 헤매다가

알뜨르 비행장 인근에서 끌려간 사람들이 흘린 듯한 고무신을 발견한다.


△ 트럭에 끌려가던 사람들은 죽음을 예견하고 신고 있던 고무신을 길거리에 버려 가는 길을 가족에게 알리려 했다.


고무신을 손에 들고 알뜨르비행장 인근을 헤매던중 어디선가 들려오는 총성..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고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 앉았다.

잠시후 불길과 연기가 피어오르는게 보인다.

알뜨르 비행장 안에 위치한 섯알오름

일제시대 제주 최대 탄약창고가 있다가 일본 패망후 미군에 의해 폭파된 곳이다.


△ 영화 "지슬"의 한장면


숨가삐 달려온 길 

담요,배게,옷가지 등이 타오르고 있다.

희생자들의 소지품이다.


오름 안쪽에 처참히 뒤엉켜 있는 수많은 시신들

면회때 갈아입으라고 건냈던 옷을 입은 남편의 시신을 한번에 알아볼수 있었다.

시신을 거두어 갈려는 순간 군인들에 의해 제지를 당했다.

남편이 처참하게 다른 시신과 뒤엉켜 죽어있는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시신도 거두지도 못하는 20대 젊은 아낙의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후 이곳은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경비가 강화되어 유족들의 접근을 불허하였다.


이상숙은 남편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 기회를 보며 맴돌던 차 6개월이 지난 이듬해 2월 새벽

경비군이 나오기 전에 남편의 시신을 발굴하여 상창리 소유 밭에 안장한다.


찢겨진 가슴안고 살아온 긴세월

이제 만 92세의 할머니가 된 그녀는 비참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예비검속 희생 67주기를 맞아 45백만원을 기부하여 그날의 사건을 담은 영구불망의 돌을 이곳 섯알오름에 세운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섯알오름 사건기록비에 새겨진 이상숙 할머니의 이야기에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본 저자의 상상을 추가하여 작성한 글로 사실과 일부 다를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집단학살과 암매장

낙동강 전선이 위태로워지자 정부의 최종 피난처를 제주도로 잠정 결정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모슬포 주둔 해병대 계엄사령부에 명하여 예비검속으로 구금된 사상이 불순한 자들을 재판없이 불법 처형하였다. 

※ 예비검속에 의한 면별 희생자수
   ㅇ한림(68명) 한경(64명) 대정(58명) 안덕(33명) 애월(6명) 제주시(1명) 서귀포시(5명) 기타(17명) 합계(252명)


△ 앞쪽 웅덩이는 백조일손 유해 149구 발굴, 뒷쪽은 만뱅디묘역 유해 62구 발굴


△ 백조일손지묘 위령비


이후 유족들의 꾸준한 탄원으로 6년이 지난 1956년 149구의 시신을 발굴하여

자타 식별이 되지 않는  132구에 대해서는 대정읍 상모리586-1번지에 안장하고 백조일손지지라 명명하였고 1959년에 위령비가 건립되었다

이후 1961년 경찰 주도하에 묘역 위령비는 파괴되고 경찰의 강요로 23위는 타소로 이장되었다

유족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1993년 백조일손 유족회가 창립되어 같은 해 위령비 제막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 백조일손지묘

섯알오름에서 학살된 희생자들의 시신은 6년이 지난 1956년에 수습할 수 있었는데 132구의 시신이 구별되지 않아 서로 다른 132분의 조상들이 한 날, 한 시, 한 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되었으니 그 후손들은 모두 한 자손이라는 의미로 백조일손지묘라 하였다


△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 (섯알오름)


섯알오름 길 

                           /김경훈 시인


트럭에 실려 가는 길

살아 다시 못 오네


살붙이 피붙이 뼈붙이 고향마을은

돌아보면 볼수록 더 멀어지고


죽어 멸치젓 담듯 담가져

살아 다시 못 가네


이정표 되어 길 따라 흩어진 고무신들

전설처럼 사록 전하네


오늘은 칠석날

갈라진 반도 물 막은 섬 귀퉁이 섯알오름


하늘과 땅, 저승과 이승 다리 놓아

미리내 길 위로  산 자 죽은 자 만나네


녹은 살 식은 피 흩어진 뼈

온전히 새 숨결로 살아 다시 만나네


△ 알뜨르 비행장 내 섯알오름 앞 제주 비엔날레에 전시된 김해곤의 작품 "한 알"이 보인다.

 

제주의 또 하나의 아픈 역사 알뜨르비행장

이곳은 중일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군이 제주도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만든 군사 기지였다. 

일제에 의해 희생된 아픈 영혼이 아직도 떠돌고 있을것 같은 알뜨르 그 안 섯알오름에서 이번에는 같은 동족 또는 국가 권력에 의해 생긴 아픔이어서 그 아픔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 아픈 역사의 땅 넓은 평야 위에 지금은 밭작물이 풍요롭게 자라나 있지만 유족과 도민들의 아픔과 상처는 언제 치유될까?

김해곤의 작품 "한 알"은 알뜨르비행장이 지니고 있는 전쟁의 역사가 치유되고 이 곳에 새로운 한 알의 생명이 잉태되어 평화의 시작을 알린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일제시대 알뜨르 비행장 전투기 격납고 20곳 중 19곳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전쟁에 미친 일제의 전투기 저장고

격납고 앞에 하얗게 피어있는 감자꽃

척박한 땅에서도 잘자라 

서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고

민중과 동거동락했던 감자,

시골에 어머니와 누님을 연상케하는 감자꽃

그래서 이쁘게 피면 필수록

더욱더 가슴 시리게 다가온다.

제주어로는 "지슬" 

제주 4.3 영화의 소재로 썻던 바로 그 지슬이다.

 

감자꽃

                    /권태웅

 

자주 꽃 핀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 제주 비엔날레 알뜨르 비행장에 전시된 조각가 최평곤의 작품

 

2017년 9월2일 ~ 12월3일 알뜨르비행장 섯알오름 입구에서는

아픈 역사의 사실을 재조명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2017 제주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있는 자는 더더욱 말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이제는 아픔을 명확히 진단하고 치유하여 미래에는 이같은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조각가 최평곤은 파랑새를 손에 든 소녀를 통해서 평화의 메세지를 우리 모두에게 전한다.

 

아픔을 치유하고

 

화해와 상생으로

 

이 땅에 영원한 평화가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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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봥옵써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버블프라이스 2017.10.16 21: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잊어서는 안될 역사 입니다.
    마지막 사진 '제주 비엔날레 알뜨르 비행장에 전시된 조각가 최평곤의 작품' 의 메세지 처럼
    현재 북한 핵문제로 전세계가 떠들석 한데요-
    아픔을 치유하고 화해와 상생길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한 주 보내시길 바래요-

  2. 고성돈 2017.10.16 2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희 글 잘썸쩌.
    작가해도 되클.

  3. Deborah 2017.10.17 00: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이 아프네요. 우리의 아픈 역사를 보는 ..ㅜㅜㅠㅠ 전쟁은 없어야해요.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4. peterjun 2017.10.17 0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네요.
    이런 아픈 역사적 사실들을 접하면 가슴 한켠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곤 합니다.
    인간의 잔인함이 이런식으로 표현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ㅠㅠ

    • 강봥옵써 2017.10.22 1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슴 아픈 제주의 역사입니다.
      그동안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빨리 4.3이 역사적으로 재조명되고 희생자들이 명예회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5. *저녁노을* 2017.10.17 04: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의 아픈 역사이지요.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않는...

    잘 보고갑니다.

    행복한 화요일 되세요^^

  6. 공수래공수거 2017.10.17 08: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슬 영화를 봤습니다
    그 현장이로군요
    정말 아픈 역사이고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번주 태풍땜에 망설여집니다

    • 강봥옵써 2017.10.22 10: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의 현장감을 살릴려고 지슬영화 한장면을 인용했고요...
      지슬영화 배경은 이곳이 아니라 조천읍의 북촌리입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7. 한화호텔앤드리조트 2017.10.17 10: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픈 역사가 땅 곳곳에 녹아있는 섯알오름이네요. 놀거리 가득한 여행지의 이미지가 강렬하지만, 분명 잊지 말아야 할 민족의 눈물이 서린 곳이라는걸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고 갑니다. 제주 하늘 아래 덩그러니 놓인 조형물들이 인상적이네요. 희망 가득한 메세지가 깃들어 있습니다:) 사진 잘 보고 가요, 쌀쌀해지는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8. 문moon 2017.10.17 1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음 아픈 일과 유족의 한이 서린 곳이네요.
    읽어가며 괜히 마음이 헛헛해서.. ㅎ

  9. 청결원 2017.10.18 07: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마음이 아픈 역사입니다..

  10. 여행하고 사진찍는 오로라공주 2017.10.18 1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제주도 섯알오름에 그런 가슴아픈 역사가 있는지 몰랐어요.ㅠㅠ 아..정말...잊혀져서는 안되고 오래 오래 기억하고 새겨야 겟네요

    • 강봥옵써 2017.10.22 1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픈 역사를 재조명하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아픔을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쉽게 이야기를 못꺼냈던 제주도민의 아픔입니다

  11. 귀여운걸 2017.10.20 21: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마음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로군요..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이 평화가 지속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