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주를 알자/제주의 물이야기

제주의 물이야기(제1탄) - 제주아낙 그녀들의 고된 삶


당신은 하루에 몇 번 샤워하십니까?

 

당신은 물이 없어서 주변에 물을 찾아 다니신적이 있나요?

 

  요즘같은 무더위에 물이 없다면 어떨까요?

지금은 어디서나 수돗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그것도 부족해 더 좋은 물을 마시기 위해 돈주고 생수를 사서 마시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물을 쉽게 구할수 있었던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바로 우리 할아버지, 아니 우리 아버지 시절만 해도 수도가 없어서 물허벅이나 주전자를 들고 용천수나 동네 공동수도에서 줄을 서서 물을 길어온 적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앞으로 제주도의 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쉽게 쓰고 있는 물의 소중함을 알리고 제주도의 보물인 지하수를 보존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이 글을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제주 아낙네들의 고된 삶이었던 물허벅시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허벅시대

1. 제주 아낙네들의 고된 삶

물이 귀했던 시절 제주의 아낙네들은 물허벅으로 물을 길어와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했다. 가뭄이 들면 물허벅(20리터)을 등에 지고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 물을 운반해야 했다. 물허벅은 제주도 물 이용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민간 도구이다.

 

제주의 가뭄은 짧게는 1개월 길게는 6개월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가뭄이 들게 되면 먼길을 물허벅을 등에 지고 물을 길어 날라야했던 일들이 우리 할머니들의 고된 삶의 일과였다. 그래서 옛날 할머니들이 대부분 허리가 굽었던 이유가 여기 있는거 같다.

 

 2. 용천수

제주도에는 비가 많이 내리는 편이지만 지질구조가 물이 쉽게 빠져 대대로 물고통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근대식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 식수는 물론 허드렛물을 용천수나 봉천수에 의존했으며 가뭄이 들어 집 근처의 수원이 말라버리면 수십리 떨어진 곳의 용천수를 길어오는 노역을 되풀이 해야만 했다. 마을의 용천수는 주민의 생명수였기 때문에 식수, 빨래등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물통을 만들어 사용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제주시에 두 흐름의 용천대, 즉 동부의 산지천과 서부의 병문천 연안지역으로 이지역 용천수를 기준으로 운반거리에 따라 석유통 1통당 1전에서 4전까지 물값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아래 도면의 청색지역은 용천수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1전을 받았고 노란색 지역은 지금의 시청지역으로       4전을 받았다. 


 

3. 공동수도

광복이후 제주도의 시급한 현안 중에서도 물문제 해결이 최대 과제로 거론되었다. 주민의 보건위생뿐 아니라 제주도 개발 촉진을 위해서는 물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인식하고 1953년 금산수원 개발을 시작으로 1955년 우물보수 및 신설 사업 등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급수형태는 공동우물 체제에서 도시상수도, 간이급수시설, 심정굴착으로 발전해나갔다..

도시상수도 공사는 제주시, 서귀, 애월, 한림, 대정지구 등에서 시행됐고 간이상수도는 수원지 주변 마을, 심정굴착은 중산간 마을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1959년 한경면 산양리에서 공동우물이 준공되었고 1960년 이후 제주도 급수사업은 5.16군사 정부의 3대 역점사업의 하나로 선정되어 물의혁명이라 불리며 빠르게 진행되어 나갔다.


 

조상대대로 용천수와 봉천수에 의존해 살아오던 주민들에게 수도꼭지를 통해 물을 얻을수 있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으며 그것은 기쁨과 감격이었다.

2탄에서는 제주도 지하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