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의 "내가 본 이어도"를 찾아서


내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을 찾은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첫번째 찾았을 때는 사진에 관심이 없이 남이 가니까 그냥 따라간 것이고 이번에 갔을 때는 사진을 1년 정도 조금 배우다보니김영갑 작가와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어서 와이프와 일부러 시간내서 찾아간 것이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은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예전에 폐교되었던 삼달초등학교 분교를 임대하여 갤러리로 직접 꾸민 것이다.


근육이 위축되는 루게릭병으로 시한부 3년 진단을 받은 상태에서 2001년에 갤러리를 만들기 시작하여 2002년에 갤러리를 개관하였다.


병으로 출사 나갈 힘조차 버거운 상태에서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중산간 지역의 폐교된 시골 학교를 꾸며 갤러리로 만든 것은 죽기 전에 그동안 찍었던 작품들을 꺼내어 보고 전시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입구로 들어서자 바로 나타나는 카메라를 둘러맨 돌하르방이 나타난다.


마치 사진을 찍다 굳어서 돌이 되어 버린듯

수호신처럼 자신의 갤러리 방향을 편안하게 바라보고 있고 그의 얼굴엔 따스한 햇살이 비친다.


그는 갤러리 정원을 작은 제주도로 꾸미고 싶어했으며 건강을 돌보는 대신 이 정원을 꾸미는데 정성을 쏟으며 70kg이었던 몸무게가 47kg으로 살이 빠지게 된다.


갤러리 입장하기 전에 정원을 한번 둘러본다.


제주의 돌을 조합시켜 형상을 만들었나보다.

가운데가 아빠, 좌측은 엄마, 우측이 딸인 것처럼 보인다

그들 위를 가려주고 있는 소나무는 집이고 앞에 놓인 돌은 엄마 아빠가 쓰는 안방, 맨 우측은 딸이 쓰는 방


김영갑 작가는 물론 결혼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카메라와 결혼했다고 해야할까..

제주도는 그의 집이고 제주의 오름과 바람 그리고 그가 찍어낸 모든 사진은 그의 아들이고 딸이었으리라.


그가 제주에 온 처음 2년은 동자석에 집중했다.


제주의 동자석은 죽은 사람을 위한 살아있는 사람의 지극한 정성의 징표이며 무속신앙 등과 융합되어 제주인들의 심성이 잘 반영되어 있다.


제주 사람들의 마음에는 죽음 저편에 이어도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제주 사람의 그런 꿈을 찍고 싶었을 것이다.



꿈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발전한다해도 나(제주)다움을 지키지 못한다면 꿈은 영원히 꿈에 머문다.

먼저 행동으로 실천할 때 이어도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가 28살 되던 1985년에 홀로 제주에 정착한 후 20년간 그는 제주의 중산간에 반해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수 없었던 색깔과 소리들, 오름만이 갖고 있었던 선, 형태 들


그는 중산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것은 사람을 황홀하게 하는 그 무엇이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 나는 중산간을 떠나지 못한다."


그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눈에 보이는 단순한 제주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바람에 흔들리고 태풍이 불어도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는 제주 사람의 부드러움 속의 강인함을 표현하고 싶은 것일지라...


갤러리 안의 그의 작업실은 지금은 주인이 없는채 비워져 있다.


그는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와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만큼 근육이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도 이 곳에서 작품에 대한 구상을 하며 20년간 찾아다니던 이어도를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살아생전 18회의 사진전을 열었다.


마지막 사진전은 2005년 3월24일 ~ 4월4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렸다.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의 사진전은 서울의 후원자 들에 의해 그가 참석하지 못한 상태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그해 5월29일 그는 숨을 거두었다.

48세의 생애 중 제주에서 보낸 세월 20년을 제주의 중산간과 오름을 사랑한 김영갑

그는 제주의 바람이 되어 그가 꿈꾸던 이어도를 향해 떠난 것이다


시작이 혼자였으니 끝도 혼자다


울음으로 시작된 세상

웃음으로 끝내기 위해 하나에 몰입했다.


흙으로 돌아가

나무가 되고 풀이 되어 

꽃 피우고 열매 맺기를 소망했다.


대지의 흙은 아름다운 세상을

더 눈부시게 만드는 생명의 기운이다.


천국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살면서도

사람들은 또 다른 이어도를

꿈꾸며 살아갈 것이다.


            ===== 김 영 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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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봥옵써

사)질토래비에서 시행하는 2018 송년 제주역사문화기행 행사에 참여했다.


아침부터 눈발이 날려 행사가 취소되는게 아닌가 걱정이 많았는데 주최측에서 기후에 관계없이 행사를 진행한다는 문자가 도착하여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버스가 기다리는 제주민속박물관으로 시간에 맞게 도착하였다.


오늘 탐방할 곳 중에 한 곳 천제연폭포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폭포수를 이용해 논용수로 활용한 채구석 군수의 이야기와 그 흔적이 서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그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천제연폭포의 비경을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천제연 1폭포는 비가 많이 오는 날에만 폭포가 형성되고 평상시는 땅속에서 용천수가 솟아나 2폭포 방향으로 흘러간다.

깍아자른 듯한 주상절리가 연못을 둘러쌓고 있고 수심이 무려 21m가 된다고 하니 연못의 빛깔을 보면 수심이 상당히 깊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아주 오랜 옛날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일곱 선녀가 한밤중에 물이 맑은 이곳에 내려와 목욕과 빨래를 하던 곳이라 하여 천제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베릿네오름의 산책로를 따라 2폭포로 가본다.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하니 혹시라도 미끄러질까봐 모두 바닥을 보며 조심스레 걷고 있다.


2폭포에 도착하니까 눈발은 더욱 거세지고 폭포소리도 아울러 우렁차게 들린다.


탐라순력도 41화폭에는 현폭사후가 있는데 탐라순력에 나선 목사 일행이 천제연폭포에서 활쏘기를 즐기는 그림이다.

현폭사후에 나와 있는 배경이 이 곳 2폭포인 것으로 보인다.


2단 폭포에서 나와 선임교로 가는 도중에 4.3 위령비가 있고 그 주변에는 먼나무와 동백나무가 붉게 자라고 있다.


이 곳에는 예전에 도살장이 있었으며 4.3 당시에 중문지역 주민들 40명이 무장대와 관련되었다는 명목으로 집단으로 학살 당한 곳이다.

천혜의 화려한 경관 뒤에 시대의 짙은 아픔이 배어 있는 곳이다.


그 때의 아픔이 잊혀지지 않는 듯, 차가운 눈보라 속에서도 붉은 열매, 붉은 꽃은 더욱 더 붉게 피어오르고 있다.


천제연 2폭포와 3폭포 사이에 있는 아치형의 선임교는 칠선녀 다리라고도 하며 국내 최초로 고유의 오작교 형태로 만들어졌다

칠선녀의 전설을 살려 각각 다른 악기를 든  아름답고 웅장하게 조각된 일곱 선녀상이 있다.


선임교에서 내려다 본 베릿내 전경은 까마득히 아래에 내려다 보이고 흩날리는 눈방울방울은 허공 속에서 한참을 맴돌다 아득한 곳에서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일행중 한명은 고소공포증이 있는지 아래를 내려다 보다 어지럽다며 바닥에 주저 않는다.


구한말 시대에 바위를 뚫고 수로를 만들어 천제연폭포의 풍부한 물을 끌어다가 중문지역 5만여평의 논에 물을 대어 쌀을 생산하였다.


이곳은 커다랗고 단단한 조면암이 절벽을 이루고 있어 장비라고는 곡괭이와 정과 징 등이 고작이었던 시절, 당시의 토목기술로는 수로를 내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나 지금 생각해도 정말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암반을 깨고 수로를 만들었다.


암반 위에 장작불을 뜨겁게 지펴 바위를 달군 다음 독한 소주를 부어 뜨겁게 하고는 찬물로 급격히 냉각시켜 급격한 온도 차이에 의해 바위에 균열이 가는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하였다


이렇게 도수로를 만든 사람은 당시 대정군수에서 파직되어 중문에 터를 잡은 채구석 군수였다.


채구석 군수는 1901년 일어난 이재수의 난 때 대정군수로 재직하였으며 난을 진압하는 동안 관민 측과 목사 사이를 오가며 유혈충돌과 난의 확산을 막는데 주력하였으나 봉세관인 강봉헌의 무고로 군수직에서 파면, 3년간 옥고를 치른 뒤 혐의가 없음이 밝혀지고 이후 중문에서 거주하면서 1905년부터 천제연폭포 주변 지세를 3년간 답사하고 물길을 열어 성천봉 아래로 물을 대어 5만여평의 황무지를 논으로 개간하는데 성공한다.


그당시에는 흙수로였으나 현재 콘크리트로 복원된 모습이며 성천봉에 이르기까지 길이가 약 2km에 이른다.


2003년 채구석 군수의 공적을 기리는 천제연 3폭포 옆에 성천답관개유적비가 세워졌다.

그 당시 논지역은 중문관광단지 개발로 현재는 논의 흔적을 찾기가 어렵고 수로의 흔적만 남아있다.


한편 채구석의 아들 채몽인(1912~1970)은 현재의 애경유지를 창업하였고 채몽인의 아들 채형석은 제주특별자치도와 합작으로 제주항공을 창업하였다.


3폭포는 제2폭포에 비해 높이가 낮은 편이지만 물줄기는 훨씬 굵은 것 같다.

짧고 굵다고 해야되나....


저 물은 이제 연못을 벗어나면 내가 되어 바다로 흘러가고 바다는 아무 흔적도 아무 변화도 없이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우리네 인생도 흐르고 흘러 결국에는 모두에게서 잊혀져 갈 것이다.


평상시 서귀포 시민들을 위한 산책로로 조성되었는데 날씨가 추워서인지 산책하는 사람은 아무도 안 보인다.


이제 종착지가 눈 앞에 보인다.


베릿네오름의 산책로를 따라 세 폭포의 모습을 눈이 내리는 풍경속에서 색다르게 감상할 수 있다는게 너무 행복한 하루였고 또한 채구석 군수의 흔적에서 척박한 제주 땅을 일구고자 앞장선 제주인의 기개와 개척정신을 느낄수 있도록 열심히 해설해주신 사)질토래비 이사장인 문영택 이사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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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봥옵써

눈이 정말 많이 왔다.

이번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제주에서 이렇게 눈이 오래동안 온거는 처음 보는거 같다.

주말에는 날씨가 풀려서 나들이를 해본다.

전부터 눈 온날 에코랜드 열차가 타고 싶었다.


메인역으로 나를 태우러 열차가 다가온다.

1800년대 증기기관차인 볼드윈 기종을 모델화하여 영국에서 수제품으로 제작된 링컨기차라고 한다.


에코랜드에는 총 5개의 기차역이 있다

첫번째 중간역인 에코브리지역에 내리면 제법 큰 호수를 만나게 된다.


곶자왈 지역에는 물이 지하로 침투가 잘되어 

물이 고일수가 없다.

바닥을 차수하여 저수지를 만든 것이다.


이제 저 호수를 지나 

에코랜드의 낭만속으로 들어가본다.



살얼음진 호수 한쪽편에 

빨간색 작은배 하나 갇혀 있다.


그 배에서는 연인들의 속삭임과

아이들의 해맑은 소리의 추억이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하모니이며

누구도 작곡한 적 없는 현악 3중주이다


작은배는 또 다른 연주자를 기다린다.

자신을 가둬버린 차가운 얼음에서 해방시켜줄

따사로운 봄날을 기다린다.


진짜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눈 위에서의 현악 3중주 협주에 눈을 감아 본다.



풍차가 돌아간다.

바람의 힘을 빌려 힘차게 돌아간다.


도깨비도로가 아니어도

낮은 곳의 물을 높은 곳으로 올려준다.


이렇게 걷다보면 레이크사이드 역에 도착한다.

피크닉가든 역으로 가기 위해 열차를 기다린다


피크닉가든 역에서 내리면 어린이들을 위한 포토죤 공간이 있다.


살짜기 훔쳐보기 1


훔쳐보기 2

훔쳐보기 그만하고 다음역으로 가보자.


열차가 오는데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간다.

군대 갈때 탓던 열차도 생각나고

대학시절 완행열차타고 MT 가던 생각도 난다.


라벤더, 그린티&로즈가든 역에 도착


이 눈을 어찌할꼬...

산더미 같은 눈덩이를 치울려니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것일까?


눈으로 덮힌 라벤더 밭 사이를 걸어본다

농부는 낮선자의 방문을 경계하는 것일까


라벤더 밭을 벗어나면 하얀 설원이 펼쳐진다.



하늘도 땅도 모두 하나다.

눈이 녹아 증발하면 구름이 되고

구름은 또 눈이 되어 내린다.


종착역으로 가는 마지막 설국열차가 다가온다

여행은 항상 설레임으로 시작해서 아쉬움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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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봥옵써

카멜리아힐은 동백나무가 있는 언덕이란 

뜻으로 1월과 2월에는 동백꽃이 

6월과 7월에는 수국이 피는 걸 볼수 있다. 

그외에도 계절마다 제주 자생식물이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독특한 향기를 품고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해주는 곳이다.


여름이 왔나 싶었는데 벌써 6월 셋째주

주말에 집에 있으면 뭐해~?



야생화길가에 들어서면 

한쪽 모퉁이에 수국이 파랑파랑

주위에 아무런 배려도 없이 

홀로 돋보이며 화려하게 서 있으니

냉정하고 또 무정하구나

그 이쁨을 나누든지 

아니면 덜 이쁘든지

이 여름이 지나면 또 어쩌리오.


파란 수국의 꽃말은 냉정,무정


보라보라한 수국도 피었는데..

흠~ 꽃말이 "소녀의 꿈"이라

소녀가 아니라 소녀의 감성이 안살아나

그래서 시는 생략하기로..


이런 길 너무 좋아..

더운데 그늘을 만들어주쟌아..

최대한 Slow.... Slow....


저기 앉아서 사진 찍으라고...

여러 형태의 포토죤이 곳곳에 있다. 


유리온실 안에도 여러가지 꽃이..


수류정이란 곳

저 속 그늘에서 쉬고 싶다.

연인 한쌍이 너무 다정히 있어

혹시나 방해될라 그냥 지나친다.

저 연인도 파란수국을 닮았나보다.


보순연지라는 연못

붕어 여러마리가 연못속에서

붕어붕어하며 떠다닌다.


연꽃 잎이 연못 수면을 덮었다.

그 잎을 밟고 지나가면

물 위를 걸을수 있을것만 같다.


소원구슬나무이다.

신혼부부가 저기 함께 앉아서

소원을 빌면 아들이든 딸이든..

그냥 앉아 있기만 해서 생긴다는건 아니고

또 다른 노력을 해야 생기겠지~


별빛인듯 별빛이 아니고

밤배인듯 밤배도 아니더라.

 


마음의 정원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저 곳에 내가 찾는 것이 있다.

행여 그새 닳기나 할까

걸음을 재촉해 본다.


이들도 모두 내 맘과 같을까

따라 잡기가 쉽지 않다.

난 이미 Slow에 적응되었나 보다.


수국 사이로 걸어볼까나

이쁘게 나올려고 온갖 폼을 다 잡는다.

 

수국 터널인데 

사람을 피해서 사진 찍는게 어렵다.


6월에는 파란수국이 주로 피고

7월에는 분홍수국이 주로 핀다는데

좀 있으면 분홍수국이 필건지 

그때는 어떤 모습일까 궁굼해진다.


전통초가 사실 저 정도면 

옛날 헛기침 깨나 했던 집안이었을거라~

입구에 3줄의 통나무

이게 바로 대문대신 사용했던 "정랑"이다.

사진처럼 3개가 모두 걸쳐져 있으면

주인이 오랫동안 출타중이라는 표시이고

한쪽 구멍에 한개를 빼내서 걸쳐놓으면

가까운 거리 출타중이며

2개를 걸쳐놓았을땐 

집에 주인이 있다는 표시이다.


채우셨나요?

비우셨나요?

못다한 마음

잔디광장에서 다 풀고 가라 하네.


마음속의 미움과 근심은 

모두 묻어 버리자.


6월의 무더운 어느날 카멜리아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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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봥옵써

제주의 4월은 꽃의 계절...

벚꽃은 이미 지고 유채도 곧 지나가겠죠?

하지만 실망하지 마세요.

앞으로 튜울립, 수국 등 꽃놀이 감은 많으니까.

가족 단위로 혹은 연인끼리

아름다운 꽃구경도 하고

귀여운 동물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힐링쉼터 휴애리를 소개해 드릴께요.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에 위치해 있고요..

네비에서 휴애리 검색하면 찾아올수 있어요.

주차장은 꽤 넓은 편이예요.


수국축제가 4월14일부터 열린다고 해서

16일(일요일)에 찾아봤어요.

매표소에 줄은 조금 서 있네요. 


안내도에 나와 있는대로 한번 산책해볼까요? 


처음 들어서니까 철축꽃이 우리를 반기네요.. 


한라산을 뒷배경으로 수국이 피어있어요.

수국축제는 시작되었지만

아직은 30% 정도만 피었고 5월초가 되면

만개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수국축제 기간은 4월14일~5월21일예요.


튜울립 꽃 색깔이 아주 진하네요.

그 뒤로 철쭉과 영산홍이 활짝 피었어요. 


돌하르방이 돼지를 품고 있어요.

그뒤에도 꽃이 피어 있는게 보이나요? 


휴애리 숲터널이예요.

여기는 연인끼리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고 걸어야해요.

애들은 한참 앞에 먼저 뛰어서 갈거예요..


원래는 매화정원이고 유채꽃은 엑스트라예요


벌써 매화열매가 열리고 있어요. 


두달전만 해도 이렇게 꽃이 활짝 피었었는데 


동물 먹이주기 체험을 할수 있는 곳이예요.

염소가 먹이 주기를 기다려요. 


승마체험장의 조랑말도

어린이가 주는 당근을 맛있게 받아 먹고 있어요.


먹이 주지도 않을거면서 왜 쳐다보냐고..

내가 먹이 주지 않을거라는걸 알았는지

가까이 오지를 않네요.


제주도 전통 변소예요. "통시"라고 하죠.

시골에서는 저 안에서 돼지를 키웠었죠


한 어린이가 주는 당근을 맛있게 먹고 있네요

저걸로는 부족한지 더 달라고 꿀꿀거려요.

 

나도 충분히 먹어야 새끼들 젖주지 

 

감귤체험장 입구 포토죤인데

진짜 귤이 아니네요..

겨울에 오면 감귤따기 체험도 할수 있어요. 


토굴속으로 들어가볼께요. 


안에 들어가보니 목공예를 하고 계시네요.

손수 만드신 건가봐요 


세계의 나비들이... 

많이 있지만 이것만 샘플로 보여드릴께요.


왜 이렇게 이름이 길고 어려울까요.

이름이 "골리앗오리엔탈리스대왕꽃무지"

외우기를 포기했어요.

굳이 외울 필요도 없는 것 같고..ㅎ 

 

흑돼지쇼 공연장이예요.

축구경기장 만큼은 아니지만 관객이 꽤 많죠?

 

흑돼지들이 미끄럼을 어떻게 타는지 볼까요?

미끄럼을 타며 신나게 내려오고 있어요.

 

미끄럼타고 내려온 흑돼지들이 운동을 해서

허기가 졌는지 정신없이 먹고 있네요.


우리도 할수 있다.

거위들도 식사를 하기위해 뒤뚱거리며

미끄러지면서 내려오고 있어요. 

거위들은 겁이 나는지 조금 망설이다 내려와요.


용감한 자만이 식사를 할수 있다.

활강에 성공한 거위들이 으시대며

식사를 하고 있어요.


흑돼지쇼 공연장에서 나와서

수국 올레길을 걸어봐요. 


철쭉도 함께 활짝 피어 있어요. 


굴렁쇠 체험장이예요.

애들과 함께 굴렁쇠 놀이를 하고 있네요. 


5월초가 되면 이 곳도 수국으로 가득 찰거예요. 


이렇게 관람이 모두 끝났어요.

이렇게 보내면 주말 하루가 행복할거 같나요? 

어딜가든지 가족들끼리 함께 야외에 나서면

가정도 화목해지고 본인도 힐링되고

모두가 건강해져서 머든지 "잘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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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봥옵써
오늘 이중섭 거리를 찾았다. 


이중섭 작가가 서귀포에 산 기간은 1951년1월부터 12월까지이다.

1.4후퇴때 원산을 떠난 이중섭과 가족은 잠시 부산에 머문 후 제주도 서귀포에 도착한다.

△길 떠나는 가족

"길떠나는 가족"이라는 작품을 보면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정든 고향을 떠나는 모습이 마치 즐거운 소풍이라도 가듯이 흥겹게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은 1954년 작품으로 이 시기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생활고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그만큼 서귀포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던 기간이 그의 인생중에 가장 행복했던 기간으로 느꼈던 것 같다.
그가 살았던 곳을 한번 보자.

주차장에 차를 세워 이 길을 따라 가면 그가 살았던 거주지가 나온다.

가는 길에 공원과 그의 동상이 있다.
그의 옆에 앉아 사진 찍는 사람들이 무척 많이 보인다.

그가 살던 집이다.

1.4평 되는이 곳에서 그와 아내 그리고 두 아들이 함께 살았다.
이후 12월에 부산으로 갔다가 생활고로 이듬해인 1952년에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부두노동등을 하다가 전쟁이 끝나자 서울로 올라간다.
1955년 미도파화랑, 대구 미국공보원 등에서 개인전을 여는등 작품활동을 꾸준히 하였다.

이중섭의 예술혼을 기리고 제주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1996년 이중섭거리가 지정되고 2002년 이중섭미술관이 개관되었다.
입장료는 성인 1000원으로 미술관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요금만 받고있다.

내부에 그림과 액자를 판매하고 있다.
전시실 내부는 촬영금지로 포토존이 따로 있었다.

그의 대표작중 하나인 "흰소"는 1954년 작품으로 마치 살아있는 소가 거친숨을 내쉬며 분노하듯 생동감을 준다.
우리 민족의 저항정신을 나타낸듯 하다.

교과서에도 나온다는 대표작 "황소"
황소가 붉은노을을 배경으로 울부짖는 순간을 그린 작품으로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황소의 애절한 눈빛에서 보여준다.
1952년 일본으로 떠난 후 이듬해 한차례 일본에 다녀온후 만나지 못하고 궁핍과 고독의 나날을 보내다 1955년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다 불규칙한 생활로 병세가 악화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난다.

그가 죽는날까지 얼마나 가족을 그리워했는지 그의 작품을 통해 나타낸 것이다.

이중섭이 서귀포에서 그린 대표적인 작품은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다

현재의 섶섬의 모습이다.
서귀포는 이중섭에게 있어 지상의 유토피아로서의 공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결코 시인이 아니다.
그가 남긴 유일한 시로써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그의 인생 자체이자 그의 작품마다 이런 그의 이런 철학이 묻어난다.

그의 인생에 대해 쓰다보니 괜히 내맘도 서글퍼지는 거 같다.
환한 밖으로 나서보자.

거리 쾌청~
제트비행기가 지나갔는지 1자 구름이..

4.9km에 이르는 작가의 산책길 안내이다.

다 걷고 싶지만 시간관계상 이중섭거리 풍경만 감상하자.


"중섭거리 중섭식당에는 중섭이 없다.

중섭이 닮아가는 태중이 형이 세월을 팔고 있다."

중섭식당 간판 옆에 붙여진 글이다.

트멍공방과 중섭공방 모습

폰케이스와 반지 팔찌, 목걸이 등 다양한 작품들을 팔고 있다.


거리에 앉아 쉬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야외 전시장


한라봉쥬스 등을 파는 카페 분위기도 묘하다.


맨 앞에서 봤던 "길 떠나는 가족"을 조형물화 하였다.


서귀포극장은 서귀포 시민들에게 문화예술의 향유지였다.

학예회 발표부터 다양한 공연과 영화상영의 공간이었다.


오늘은 우리나라 고난의 시대에 불행하게 살다간 비운의 천재화가 이중섭작가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게된 하루였다.

그의 시 "소의 말"을 읊으며 오늘 포스팅을 마치고자 한다.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제주에 대해 더 많은것을 알고 싶으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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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봥옵써
무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제 방학기간도 반이 지나고 먼가 아쉬움이 남아 있으리라.
별 준비없이 간단히 애들과 신나게 놀수 있는 곳을 추천합니다. 애들도 신나지만 어른들도 즐겁고 또 신선 놀이를 할수 있는곳.. 바로 화순해수욕장에 있는 야외 해수풀장입니다.

차를 주차하고 해수욕장으로 들어서자 맨먼저 보이는 플랜카드. 여기서 영화도 상영하나봅니다.

백사장 들어서서 왼쪽을 보니  영화상영 하는 곳이 여긴가 봅니다. 영화는 야간에 상영한다고 합니다.

해수욕장에 들어서니 물놀이를 즐기는 어린이들.. 지금 순간보다 더 행복했던 순간이 얼마나 될까요?

보트 한대가 아날로그식으로 노를 저어가고 있습니다.

이때 모터보트가 약올리며 달립니다

안으로 더 들어서면 해수풀장이 보입니다.

풀장의 물은 전부 지하에서 나오는 용천수입니다. 물이 엄청 차갑습니다.

풀장 옆에는 신선놀이할수 있는 평상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고기조 구워먹고 치킨도 시켜먹고 술도 한잔하고 있습니다.

여름이 지나기 전에 꼭 한번 가보시기를~~
Posted by 강봥옵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