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질토래비에서 시행하는 2018 송년 제주역사문화기행 행사에 참여했다.


아침부터 눈발이 날려 행사가 취소되는게 아닌가 걱정이 많았는데 주최측에서 기후에 관계없이 행사를 진행한다는 문자가 도착하여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버스가 기다리는 제주민속박물관으로 시간에 맞게 도착하였다.


오늘 탐방할 곳 중에 한 곳 천제연폭포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폭포수를 이용해 논용수로 활용한 채구석 군수의 이야기와 그 흔적이 서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그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천제연폭포의 비경을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천제연 1폭포는 비가 많이 오는 날에만 폭포가 형성되고 평상시는 땅속에서 용천수가 솟아나 2폭포 방향으로 흘러간다.

깍아자른 듯한 주상절리가 연못을 둘러쌓고 있고 수심이 무려 21m가 된다고 하니 연못의 빛깔을 보면 수심이 상당히 깊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아주 오랜 옛날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일곱 선녀가 한밤중에 물이 맑은 이곳에 내려와 목욕과 빨래를 하던 곳이라 하여 천제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베릿네오름의 산책로를 따라 2폭포로 가본다.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하니 혹시라도 미끄러질까봐 모두 바닥을 보며 조심스레 걷고 있다.


2폭포에 도착하니까 눈발은 더욱 거세지고 폭포소리도 아울러 우렁차게 들린다.


탐라순력도 41화폭에는 현폭사후가 있는데 탐라순력에 나선 목사 일행이 천제연폭포에서 활쏘기를 즐기는 그림이다.

현폭사후에 나와 있는 배경이 이 곳 2폭포인 것으로 보인다.


2단 폭포에서 나와 선임교로 가는 도중에 4.3 위령비가 있고 그 주변에는 먼나무와 동백나무가 붉게 자라고 있다.


이 곳에는 예전에 도살장이 있었으며 4.3 당시에 중문지역 주민들 40명이 무장대와 관련되었다는 명목으로 집단으로 학살 당한 곳이다.

천혜의 화려한 경관 뒤에 시대의 짙은 아픔이 배어 있는 곳이다.


그 때의 아픔이 잊혀지지 않는 듯, 차가운 눈보라 속에서도 붉은 열매, 붉은 꽃은 더욱 더 붉게 피어오르고 있다.


천제연 2폭포와 3폭포 사이에 있는 아치형의 선임교는 칠선녀 다리라고도 하며 국내 최초로 고유의 오작교 형태로 만들어졌다

칠선녀의 전설을 살려 각각 다른 악기를 든  아름답고 웅장하게 조각된 일곱 선녀상이 있다.


선임교에서 내려다 본 베릿내 전경은 까마득히 아래에 내려다 보이고 흩날리는 눈방울방울은 허공 속에서 한참을 맴돌다 아득한 곳에서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일행중 한명은 고소공포증이 있는지 아래를 내려다 보다 어지럽다며 바닥에 주저 않는다.


구한말 시대에 바위를 뚫고 수로를 만들어 천제연폭포의 풍부한 물을 끌어다가 중문지역 5만여평의 논에 물을 대어 쌀을 생산하였다.


이곳은 커다랗고 단단한 조면암이 절벽을 이루고 있어 장비라고는 곡괭이와 정과 징 등이 고작이었던 시절, 당시의 토목기술로는 수로를 내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나 지금 생각해도 정말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암반을 깨고 수로를 만들었다.


암반 위에 장작불을 뜨겁게 지펴 바위를 달군 다음 독한 소주를 부어 뜨겁게 하고는 찬물로 급격히 냉각시켜 급격한 온도 차이에 의해 바위에 균열이 가는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하였다


이렇게 도수로를 만든 사람은 당시 대정군수에서 파직되어 중문에 터를 잡은 채구석 군수였다.


채구석 군수는 1901년 일어난 이재수의 난 때 대정군수로 재직하였으며 난을 진압하는 동안 관민 측과 목사 사이를 오가며 유혈충돌과 난의 확산을 막는데 주력하였으나 봉세관인 강봉헌의 무고로 군수직에서 파면, 3년간 옥고를 치른 뒤 혐의가 없음이 밝혀지고 이후 중문에서 거주하면서 1905년부터 천제연폭포 주변 지세를 3년간 답사하고 물길을 열어 성천봉 아래로 물을 대어 5만여평의 황무지를 논으로 개간하는데 성공한다.


그당시에는 흙수로였으나 현재 콘크리트로 복원된 모습이며 성천봉에 이르기까지 길이가 약 2km에 이른다.


2003년 채구석 군수의 공적을 기리는 천제연 3폭포 옆에 성천답관개유적비가 세워졌다.

그 당시 논지역은 중문관광단지 개발로 현재는 논의 흔적을 찾기가 어렵고 수로의 흔적만 남아있다.


한편 채구석의 아들 채몽인(1912~1970)은 현재의 애경유지를 창업하였고 채몽인의 아들 채형석은 제주특별자치도와 합작으로 제주항공을 창업하였다.


3폭포는 제2폭포에 비해 높이가 낮은 편이지만 물줄기는 훨씬 굵은 것 같다.

짧고 굵다고 해야되나....


저 물은 이제 연못을 벗어나면 내가 되어 바다로 흘러가고 바다는 아무 흔적도 아무 변화도 없이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우리네 인생도 흐르고 흘러 결국에는 모두에게서 잊혀져 갈 것이다.


평상시 서귀포 시민들을 위한 산책로로 조성되었는데 날씨가 추워서인지 산책하는 사람은 아무도 안 보인다.


이제 종착지가 눈 앞에 보인다.


베릿네오름의 산책로를 따라 세 폭포의 모습을 눈이 내리는 풍경속에서 색다르게 감상할 수 있다는게 너무 행복한 하루였고 또한 채구석 군수의 흔적에서 척박한 제주 땅을 일구고자 앞장선 제주인의 기개와 개척정신을 느낄수 있도록 열심히 해설해주신 사)질토래비 이사장인 문영택 이사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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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봥옵써